' 였을 정도로 국외에서까지 이슈가 될 정도였다.
그리고 폐모살제는 광해군 임기 내내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.
그런데 예부 禮部 에서 멀쩡한 장자 長子 가 있는데, 왜 서열을 무시하고 셋째 아들을 태자 太子 로 삼으려 하느냐고 반대하고 있었다.
Music [ ]• ㅡㅡ; 선조의 이런 야욕 덕분에 조정은 영창대군에 줄은 서는 유영경 일당의 소북과 광해군을 지지하는 정인홍 일파의 대북으로 갈라지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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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창대군이 강화로 유배된 후 조정에선 그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8개월 넘게 빗발쳤으나 광해군은 절대 응하지 않았다.